지난 8월 24일, 제주 한림읍의 한 야자수 농장에서 신원 미상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부패가 심해 얼굴로는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고, 마지막 남은 단서는 손목에 남아 있던 금팔찌 하나였다.
그리고 그 팔찌는, 104일 전 제주의 한 숙소를 나선 뒤 연락이 끊긴 30대 여성의 것이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포털에서는 이상한 장면이 벌어졌다.
같은 이름을 검색했을 때, 한쪽에는 역도 선수 출신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의 근황이, 다른 한쪽에는 104일 만에 주검으로 발견된 실종 여성의 소식이 나란히 떴다.
같은 이름, 완전히 다른 무게.
하지만 이 글에서 진짜로 들여다보고 싶은 건 이 우연한 대비가 아니라, 그 104일 동안 대한민국의 실종 대응 시스템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했는가 하는 부분이다.
“통화했다”는 거짓말 하나로 끝난 수색
여성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건 5월 12일 밤이었다.
사흘 뒤인 5월 15일, 남자친구가 실종 신고를 접수했다.
그런데 이 신고는 접수된 지 단 2시간 30분 만에 종결 처리됐다. 담당 경찰관이 “본인과 통화해 소재를 확인했다”고 보고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훨씬 참담했다.
그런 통화 기록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경찰관은 하지도 않은 통화를 했다고 기록하고, 살아있는 사람을 서류상으로만 “확인 완료”시킨 뒤 사건을 닫아버린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단 한 번의 실수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취재 결과 이 경찰관은 지난해 3월부터 올해 8월까지 처리한 실종 신고 298건을 별도의 확인 절차 없이 스스로 종결 처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가운데 최소 4명이 훗날 시신으로 발견됐다.
실제로 같은 경찰관이 담당했던 60대 남성의 실종 신고 역시 허위로 종결됐고, 가족이 뒤늦게 재신고한 끝에 51일 만에 변사체로 발견됐다.
같은 나흘 사이 제주에서만 실종 신고자 4명이 잇따라 시신으로 발견됐고, 그중 최소 두 건이 이 경찰관의 허위 종결 사건이었다.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을 걸러내지 못한 조직
이 경찰관에게는 이번이 처음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2023년 가정폭력 신고 처리와 관련해 내부 징계위원회에서 이미 불문경고를 받은 이력이 있었고, 올해 7월에는 여자화장실 무단 침입 혐의로 직위해제까지 된 상태였다.
그런데도 그는 계속 실종 사건을 담당하며 신고를 셀프 종결해왔다.
가족들이 손 놓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두 달 가까이 아무 진전이 없자 7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재신고를 시도했다.
하지만 별다른 조치 없이 시간만 흘렀고, 언론에 사건이 알려진 뒤에야 8월 20일부터 140명 규모의 대규모 수색이 시작됐다.
그리고 나흘 뒤, 수색대는 마지막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40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야자수 농장에서 여성으로 추정되는 시신과 휴대전화를 함께 발견했다.
경찰청은 국회 보고에서 사망 원인을 질식사(목맴 추정)로 보고 있으며, 타살을 의심할 만한 흔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확한 신원과 사인은 부검을 통해 최종 확인될 예정이다.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정황은 이 사건이 단순 태만을 넘어선다는 것을 보여준다.
프로파일링 시스템에 입력돼 있던 실종자 정보가 삭제됐고, 종결 사유는 임의로 ‘특별사유’로 변경돼 추적을 어렵게 만들었다.
인근 CCTV 영상 118대 분량도 삭제된 정황이 확인됐다.
해당 경찰관은 직무유기와 전자공문서 위조·행사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진짜 질문은 “왜 이 사람이었나”가 아니다
여기서 대부분의 보도는 멈춘다.
문제 있는 경찰관 한 명을 짚어내고, 그의 과거 징계 이력을 나열하고, 인사 관리의 허점을 지적하는 선에서 끝난다.
하지만 이 프레임에는 중요한 허점이 있다.
만약 이 경찰관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 시스템은 정말 안전했을까.
답은 ‘아니오’에 가깝다.
대한민국 현행법상 강제로 소재를 파악할 수 있는 실종자는 18세 미만 아동·청소년, 치매 환자, 지적장애인으로 한정된다.
이들을 제외한 일반 성인의 실종에는 법적 강제력이 거의 없다.
성인이 사라지면 경찰은 원칙적으로 이를 범죄 관련성이 없는 한 ‘자발적 가출’로 분류할 수 있고, 본인의 의사에 따른 잠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색의 강도와 속도가 크게 달라진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한 ‘성인실종자 소재발견 및 수색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 여러 차례 발의된 바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사생활 침해 소지 등이 쟁점이 되며 회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되기를 반복했다.
그 사이 통계는 쌓여갔다. 최근 10년(2016~2025년)간 실종 신고 후 사망한 채로 발견된 사람은 1만 3,639명, 연평균 약 1,364명에 달한다.
2023년 한 해에만 접수된 실종 신고 7만 4,847건 중 7만 4,827건이 해제됐지만, 여전히 약 7,000명은 소재조차 파악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다시 말해 장미란씨의 104일은 ‘운 나쁘게 나쁜 경찰관을 만난’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매년 1,364명이 비슷한 방식으로 시스템의 틈 사이로 사라지고 있는 구조 위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이 경찰관이 없었다면 이번 104일은 없었을지 몰라도, 성인실종법이 없는 한 다음 104일은 언제든 다시 시작될 수 있다.
뒤늦은 절차 개선이 되돌릴 수 없는 것
경찰은 사건이 알려진 뒤 실종 사건 종결 시 반드시 상급자 승인을 거치도록 절차를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필요한 조치이지만, 이미 지나간 104일을 되돌리지는 못한다.
절차 하나를 추가한다고 해서 ‘자발적 가출’과 ‘위험에 처한 실종’을 가르는 법적 기준의 공백 자체가 메워지는 것도 아니다.
이번 사건이 남긴 질문은 결국 두 가지로 좁혀진다.
성인이 사라졌을 때 국가가 얼마나 신속하고 강제력 있게 움직일 수 있는지에 대한 법적 근거를 언제 마련할 것인가.
그리고 그 근거가 마련되기 전까지, 지금 이 순간에도 ‘자발적 가출’로 분류돼 방치되고 있을지 모르는 또 다른 실종자를 우리는 어떻게 찾을 것인가.
“왜 아무도 제때 찾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결국 이 두 가지 질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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